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그것, <GP506>

출연: 천호진, 조현재, 이영훈
제작사: (주)모티스, (주)보코픽쳐스
배급사: 쇼박스(주)미디어 플렉스
상영시간: 120분
개봉일: 2008.04.03
<큐브>(빈센조 나탈리 감독, 1997년) 이후로 나는 공포 영화를 기피하게 되었다. <큐브>를 (고백컨데 연소자관람불가 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때) 처음 봤을 때에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고, 극한의 상태에 빠진 인간들이 보여주는 추하디 추한 모습을 이렇게나 간결하고 우아하고 표현한 감독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이 채 썰리듯 썰려지고 아이스크림처럼 흐느적 녹아내리는 장면들을 보고 나니, 어지간한 영화를 보면서도 '혹시 하늘에서 뭐가 떨어져서 저 사람을 깔아 뭉개는 건 아닐까?' '저기에서 갑자기 자동차가 튀어나와 사람을 치는 건 아냐?' '저 사람 왜 저렇게 눈을 가까이 가져가. 혹시 눈알이 파지는 거 아냐?' 따위의 오만가지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아, 이것도 일종의 트라우마라면 트라우마일까.
여하튼 덕분에 공포 영화를 멀찌감치 기피하게 되어 어지간한 주위 사람들의 꼬임과 추천이 아니고서야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차에, 동생의 엄청난 꼬임으로 공수창 감독의 <알포인트>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공포 영화가 재밌을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장병장의 마지막 독백은 지금 생각해도 참 슬프다.)
그런데 그 공수창 감독의 두 번째 영화가 나왔단다. 포스터를 보아하니 이번에도 군대가 배경이고, 공포 영화인 듯 하다. 아니, 솔직히 포스터에는 멀쩡히 '미스테리 수사극'이라고 써있긴 하지만, 공수창 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스테리라는 표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한참 고민했어야했다. 아, 이 감독, 재밌긴 할 텐데, 보면서는 또 겁나게 무서울텐데, 하고.
아무나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최전방 경계초소 GP506. 어느 날 이곳의 소대원 전원이 몰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수색조에 의해 발견 된 한 사람의 생존자는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채 도끼를 들고 넋이 나가 있다. 그리고 혼수 상태. 그 사건에 휘말린 GP장이 참모총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온 군대가 바짝 긴장하고, 막 아내를 떠나 보낸 슬픔을 추스를 틈도 주지 않고 노수사관(천호진 분)을 그곳에 보낸다. 19구의 시체. 1명의 생존자 겸 용의자. GP506 총 인원은 21명. 사라진 1명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알포인트>나 이 영화를 보면서 공수창 감독은 군대에 악감정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군대 공포물을 통해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알포인트>에서는 '손에 피를 묻힌 자는 살아돌아갈 수 없다'는 저주를 통해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서 전쟁이 대량 살인이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 반면, <GP506>에서는 냉전 시대의 잔존물, 나아가 우리나라의 분단 사실의 무가치성을 너무나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이부분에서 조금 도덕책스러운 전개가 진행되어 아주 살짝 분위기를 깨기는 한다. 대립 관계가 약했다고나 할까.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를 단순히 군대물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라는 포스터의 태그라인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공포 기반의 미스테리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물고 물린다. 이 이야기들 속에는 군인으로서의 딜레마(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군 내의 사건을 최대한 축소시키고 윗 선에 알려지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와 살아남고자 하는 한 개개인의 (추악해보이기까지 하는) 생존 본능이 모두 표현된다. 이 이야기들을 보면서 소름끼치도록 공수창 감독의 능력에 감탄을 보냈고, 그러면서도 아직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이 슬퍼지기까지 한다.





댓글
2008/04/11 13:34
알포인트 무지 재밌게 봤었는데... 재밌겠다 이거. -0-
2008/04/12 02:00
재밌어요- 한번 보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