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피용 - ![]()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열린책들 |
예전에 그런 실험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한 우리에 몇 마리의 쥐를 넣고 그들의 사회적인 모습을 관찰하는 실험이었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자 일정 비율의 권력자, 노동자, 무임승차자등이 생겨났단다. 그래서 그 생쥐들의 수를 줄였는데, 역시 일정 시간이 지나자 동일한 비율로 권력자, 노동자, 무임승차자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즉, 사회라는 측면에서 일정한 비율로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며 그 비율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 실험 결과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 일컬어지는 사회라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조절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파피용은 지구로부터의 일류 탈출기를 그리고 있다. 사고로 인해 한 항해사는 꿈을 잃어버렸고(엘리자베트 말로리), 다른 한 사람(이브 크라메르)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엘리자베트가 꿈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이브는 인류에 의해 황폐해진 지구를 탈출할 거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었고, 그 프로젝트의 또 다른 책임자로 엘리자베트를 지목한다. 자신에 의해 꿈을 잃어버린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싶었던 이브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직장, 국가, 그리고 세계로부터 배척당한 이 프로젝트는 결국 한 거대한 기업가(바그리엘 맥 나마라)의 도움을 얻어 착실하게 진행된다.
일찍이 시도된 적이 없었던 이 거대한 지구 탈출 계획. 그것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거대한 새로운 세계의 재건축, 혹은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함이었다. 1,000년간의 우주 여행을 위해 거대한, 왠만한 도시만한 크기를 가진 우주범섬 '파피용'호가 제작되고, 새로운 세계를 위한 인류 14만여명이 선발되어 파피용호에 몸을 싣는다. 50대(代)가 넘는 시간 동안 광활한 우주를, 그 종착지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바로 그곳을 향한 기약없는 여행. 그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프로젝트의 창시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엄선된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 의해 그들의 여행의 종착역에서 그들은 지구에서와는 다른, 평화만이 가득하고 환경 오염도 없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혹자는 이 소설을 가지고 '현대판 창세기'라고 일컫는다. 그만큼이나 이 소설에는 창세기를 빗댄 내용이나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베르베르가 창세기를 비꼬기 위함인지, 아니면 창세기에 대한 단순한 오마쥬인지, 그도 아니라면 창세기에 대한 또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는 베르베르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창세기'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리기까지의 과정이다.
프로젝트 발기인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1,000년, 50세대라는 기나긴 우주 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행성에 도착했을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도록 14만 4천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을 그들의 프로젝트에 동참시킨다. 우주범선은 탑승 인원 그 자체만으로 이미 하나의 소도시였고, 실제로 그 안에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도시를 건설하고 살 수 있도록 최상의 환경을 구축해 두었다. "법 없이도 살만한 사람들"을 선발하려 노력했지만 여행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이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일컬은 지구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었다.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들이 그토록 증오해마지않았던) 법과 경찰, 정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반란군과의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으로 자신들이 죽는 것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될 수 있음에도.
우리 안에 갖혀 있는 쥐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자'였던 쥐라도, '성실한 자'들만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다시 '권력자', 혹은 '무임승차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아무리 성실하고, 폭력성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놨다고는 해도,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려 폭력성이 나타나고, 나태해지며, 권력을 꿈꾸게 된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소설 어디에선가 잠시 언급되었던 것처럼,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기조절 시스템을 신이 주입시켜 놓은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저 단순한 신의 장난으로 그 포악한 본성을 내포한 채 태어나는 것일까.
소설의 마지막. 한 문장은 "언제까지 이렇게 탈출이 계속될 수는 없다."라는 말은, 소설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시작되고 있는 듯 했다. 그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시 소설의 첫 장을 펼쳐도 위화감이 들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베르베르가 그 수많은 이야기와 에피소드들 사이에서 이야기했던,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매번 우리는 '또 다시 이렇게 탈출할 수는 없어.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세계를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했던 시조가 몇 백명 쯤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