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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군의 문화와 인터넷 이야기.

10점 - 강풀 글 그림/문학세계사
포털사이트 다음을 통해 2007년 4월 연재를 시작하여 지난 9월 3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강풀의 순정만화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 한국사회에서 소외된 노인들의 사랑을 통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가슴 찡한 이야기다.

드라마나 영화의 '뻔한 스토리' 중의 하나로 '시한부 인생'이 있다. 얼핏 생각나는 것들만 꼽아봐도 <편지>(이정국 감독, 1997),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감독, 1998), <파이란>(송해성 감독, 2001), <선물>(오기환 감독, 2001), <국화꽃 향기>(이정욱 감독, 2003), <아는 여자>(장진 감독, 200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송해성 감독, 2006) 등 끊임이 없다. 보통 주인공들의 '시한부 인생'은 불치병을 선고받으면서 결정된다.1 이러한 상황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며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전달한다. 우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을 때. 그네들은 앞으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슬퍼한다. 그 후 "Five Stages of Grief" 를 거치는 과정이 지나고, 그네들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 떠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은 말 그대로 "슬프도록" 아름답다. 저만치, 눈 앞에 끝이 보이기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그네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슬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 죽음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마지막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설마 나한테 일어나기야 하겠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사형수가 되는 것보다는) 가까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찾아올 수 있음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준다. 즉, 불치병에 걸린 가녀린 사랑 이야기는 슬픔이 극대화된, 억지스러우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시한부 인생의 사랑이야기는 너무 작위적이다. 목숨을 내놓을 만큼 사랑하는 연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너무나 아름답고,2 그네들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무릎 꿇으면서3 '죽음 == 나쁜놈' 등식이 성립된다. 이건 바꿔 말하자면 어린이용 동화의 오래된 클리셰, '옛날 옛날에 공주님과 왕자님이 살았어요. ...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현대판이다. 종종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들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과 똑같이, '그 여자가(혹은 남자가) 죽지 않았더라면 걔들이 정말 같이 죽을 때까지 행복하고 사랑했을까?'라는 생각이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게다.

"우리는 당장 죽어도 어색할 것이 없는 나이였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넓게 봤을 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러브 스토리이다. 김만석 할아버지의 혼잣말처럼, 당장 죽어도 어색할 것이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사실 '노인'이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말이 함께 있으면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영화 <죽어도 좋아>(박진표 감독, 2002년)가 왈가왈부 회자되었던 것도 그 탓이었을게다. 포스터부터 너무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노인'이라는 벽을 풀어헤치고 보자면 그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분들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도, <죽어도 좋아>에서 충격 요법까지 써가면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그것이었다.

"기껏... 우유나... 매일 준다는 말이나 하다니... 이젠 다른 말로 바꿀 수도 없는데..."

오히려 그분들의 사랑에는 젊은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엄청난 깊이가 있다. 안사람을 먼저 떠나 보낸 김만석 할아버지, 어릴 때 힘들게 살다 가출한 후 남자에게 배신당한 송이뿐 할머니는 스스로의 삶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너무 높은 산이었다. 그리고 그 산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섣불리 사랑을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사랑에 그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의 노고는 물론이고 다시 후회스러운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스스로의 소망마저도 간절했다. 게다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그 사랑의 모습이 너무나 밀도 있게 진행되어 "마지막까지 함께 했어도 그네들이 정말 행복했을까?"라는 식의 의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애초에 있지도 않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우리 나이에... 지금 헤어지면 다시 볼 수 있을까..."

"우리 손 떼놓지 말어."

그 배려는 이별에 대한 자신의 슬픔마저도,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도 극복하는 것이기에 더 아름답다. 쏟아지는 눈물은 억지스럽지 않고, 단지 안타깝기만 한 심정때문만은 아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지금 우리의 가까운 어른들이 겪고 있는 일이라는 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의 죄책감이 더해진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당신'이 아닌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질리지 않고 그 의미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잘... 살고... 있지요? 나도... 잘... 살고 있어요..."

슬프지만 이들의 마지막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너무 뻔히 보이는 결말이 답답하고 슬프다. 차라리 만화가를 졸라서, 작가를 졸라서 바꿀 수 있는 결말이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 흐르는 슬픔을 참으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슬퍼도 신의 피조물인 우리가 그 존재 자체를 반할수는 없을 테니까. 거자필반去者必反,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하지만 회자를 만날 기쁨보다 거자를 정리할 준비를 먼저 해야만 했던 그들. 오, 그것이 인생이라니. 슬프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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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같이 사형 선고를 받는 등의 경우가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 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에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기 때문인지 잘 눈에 띄진 않는다. [Back]
  2. 여기에서 '그들'이란 연인들의 사랑 뿐만 아니라 연인들 자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시한부 인생치고 예쁘지 않은 여주인공을 본 기억이 없다. 또 멋지지 않은 남자가 없었다. '미인박명'이란 말은 그래서 나온 건가? (이건 물론 농담이다.) [Back]
  3. 물론, '넌 내 가슴 속에서 영원할거야.'라는 식의 닭살 대사도 가능하지만. [Back]
2008/01/12 02:38 2008/01/12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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