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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군의 문화와 인터넷 이야기.

원스 어폰 어 타임
감독: 정용기
출연: 박용우, 이보영
제작사: (주)윈엔터테인먼트
배급사: CH 엔터테인먼트
상영시간: 110분
개봉일: 2008.01.30

<원스 어폰 어 타임>은 포스터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해방기에 활약했던 가상의 사기꾼과 독립운동가들을 그린 팩션이다. 여기에 석굴암 본존불상의 미간백호상에 있던 보석다이아몬드, '동방의 빛'의 존재를 놓고 벌어지는 사투는 음모론스러운 분위기도 나지만, 전반적으로 봉구(박용우 분)와 하나꼬(이보영 분)의 아웅다웅 다툼과 미네르빠 사장(성동일 분)과 요리사(조희봉 분)의 어리버리 독립운동이 시종일관 웃음을 짓게 만드는 케이퍼 무비다.

이 영화에 나타나는 이해 집단들은 그 성질이 다들 독특하다. 독립을 위해 한목숨 바치는 것도 아깝지 않은 독립운동가(미네르빠 사장과 요리사), 조국과 민족이 어찌되든 일단 자기 앞가림만 하면 된다는 현실주의자(봉구와 하나꼬/총감),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수만은 서민들, 조국과 민족을 버리고 일본을 믿고 일본인이 되고 싶어하는 조선인(야마다 중위, 하세가와 경부). 이들은 '동양의 빛'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저마다의 야망과 꿈을 품고 다가간다.

자, 여기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왜 '동방의 빛'에 목숨을 거는가에 대해 몇 집단들에 대해선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케이퍼 무비를 지향하면서 심각한 얘기를 함께 버무리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한쪽에선 봉구가 "용용 죽겠지, 니 돈은 내가 먹는다!" 이러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선 하세가와 경부(임형준 분)가 "내가 왜 일본인이 되고 싶은 줄 알아?"라면서 회상이라도 빠져들면 영화의 균형이 맞지 않을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영화는 이들의 갈등 부분을 약간의 '간'만 보여주고 과감하게 처리해 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총감은 이 영화에서 나오는 가장 현실주의적인 자다. 1945년 8월 15일 며칠 전부터의 시간을 다루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가 우리나라의 독립과 함께 해피 엔딩이 될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총감은 며칠 전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질 것이며, 그로 인해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일본이 패전할 상황에서 차라리 '동방의 빛'이라도 챙겨 떠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해! 실제로 그 당시에 일본에서 원폭이 떨어질 것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총감은 엄청난 예지 능력을 가졌거나, 아니면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미래인이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동방의 빛'을 갈구하는 총감 캐릭터를 그리기 위해 비교적 현실적인 설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민족혼"을 들먹이기엔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헤칠 우려가 있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에 힘들 것이라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이 영화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아니니까. 하지만 총감은 시종일관 근엄한 얼굴을 하고서는 '동방의 빛 내놔!'하는 모습은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캐릭터의 미스 매치. 차라리 총감이 아예 코믹한 캐릭터였다면 이런 느낌이 덜했을 것이다.

총감과는 달리 야마다 중위(김수현 분)와 하세가와 경부는 일본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조선인들이다. 총감은 일본이 패전할테니 돈이나 챙기려 하고 있는데, 그의 오른팔긴 야마다 중위와 야마다 중위의 심복(야마다가 이용하는 것이겠지만)인 하세가와는 일본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다. 영화의 시간이 1945년 8월 15일이 되어갈수록 이들에게는 '니들 독립한 다음에 어쩌려고 그러니...'라는 측은 지심이 들기는 하는데, 왜 그토록 일본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들이 '동방의 빛'(아니면 '동방의 빛'을 훔쳐간 도둑 '해당화')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상관인 일본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함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그래야 하는가? 단지 '나쁜 놈'이기 때문에? 하나꼬/춘자는 그나마 왜 그녀가 그렇게 현실주의적인지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세상에, 동네 음식점 사장과 요리사도 독립 운동을 하고 있는 판국에 일본인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저 꼬라지라니. 조국과 민족을 버린 나쁜 놈들. 영화 중간 중간 이네들은 일본인 상관에게 '너희 조센징들은 그래서 안돼.'라며 무시받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어디, 다른 사람들은 그런 수모를 겪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그러면서도 하세가와가 "왜 이러십니까, 같은 동포끼리."라면서 자기 상관에게 이죽거리는 장면은 웃기기는 하지만 뒤돌아보면 초밥 속에 된장을 가득 넣고 씹고 있는 듯한 맛이 난다.

한 쪽을 포기할거면 아예 포기하든지, 함께 갈 것이라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든지, 감독은 영화의 바른 노선을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허나 한 쪽을 포기한 듯 하면서도 자꾸만 미련이 남았는지 다른 한 쪽을 찝적거리는 바람에 영화는 가끔씩 기우뚱거린다. 그래도 영화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는 듯 가끔 저지른 외도를 무마할 수 있을 정도의 전개를 보여준다. 그다지 (영화의 분위기 상) 심각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시종일관 개그스럽게 독립운동을 벌이던 미네르빠 사장과 요리사가 마지막에는 왠일인지 멋진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개그로 마무리 지어지는 모습은, 나름대로 균형을 잡기 위한 감독의 많은 고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대한독립 만세여, 기여, 아니여."라는 대사가 웃기면서도 멋있다고 느껴지는 시점에서 감독은 그러한 고민에 대해 보상을 받은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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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다소 무리한 설정의 캐릭터들이 나오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민족 유물을 일본인들에게 팔아넘기는 봉구에게 장천(안길강 분)이 '그래도 민족혼이 담긴 것들인데'라고 꾸짖자, "민족혼이 밥 먹여줘? 당장 오까네가 아리마셍인데."라고 되받아치는 모습에서도 봉구는 이상(민족혼)보다는 현실(오까네)을 더 중요시한다. 그런 봉구와 거래를 하지 않으려는 장천 역시 순금 덩어리에 넘어가고, 하나꼬/춘자는 일본이든 한국이든 지긋지긋하니 제3국으로 떠나고자 한다. 결국 영화의 결말에서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지 나타날 때에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목적에 다다르는 현실주의적인 방식과 이상주의적인 방식의 미묘한 차이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된다. 이는 영화 전체에 걸쳐 나타나기도 하고, 미네르빠 사장과 주방장이 '노선' 어쩌고 왕왕거리며 싸울 때에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현실주의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렇기에 그 수많은 캐릭터들이 (약간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영화에 얼굴을 비치고, 약간 모자란 듯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오로지 순수하게 이상을 쫓아가는 캐릭터는 미네르빠 사장 한 명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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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3 16:41 2008/02/0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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