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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군의 문화와 인터넷 이야기.

'조은지'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1/20| 피디| 꼭 최고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감독: 임순례
출연: 문소리, 김정은, 엄태웅, 김지영, 조은지
제작사: MK 픽쳐스
배급사: 싸이더스 FNH
상영시간: 124분
개봉일: 2008.01.10

처음 임순례 감독을 접하게 된 건, 비디오 가게에서 우연히 집어 들었던 <세친구>(임순례, 1996)였다. 여기에서 임순례 감독은 사회라는 세계를 알아가는 가련한 세 청년들을 그리더니,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 2001)에서는 사회에 나와서도 꿈을 쫓고자 했던 가련한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를 그려주었다. 거기다가 인권 영화인 <여섯개의 시선>(임순례 외 5인, 2003)에서는 사회의 차별을 미리부터 대비하는 여고생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렸다. 이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감독의 고의든 아니든, 다음번 타자는 '아줌마'들의 이야기였고, 임순례 감독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온갖 어려움을 딛고 감동적인 경기를 치러낸 멋진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들에는 사람을 향한 연민憐憫이 가득 담겨져 있다. 소위 '소수자들을 위한 영화'에서는 그네들의 고난과 역경을 스크린하나 가득 드러내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을 향한 연민을 느끼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들의 영화에서는 그러한 강요를 찾아보기 힘들다. 관객에게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감독 스스로 그네들을 향한 연민이 가득 담겨져 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룸싸롱에서 알몸으로 연주하며 순수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은, 감독이 '괜찮아. 그래도 너희는 그 때와 같으니까. 괜찮아, 괜찮아질거야.'라며 캐릭터들에게 위로해주는 듯 했다. 덤덤하게 그네들의 생활을 연민 가득한 스크린으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임순례 감독의 진정한 힘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도 임순례 감독은 이러한 큰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그리고 차별적인 눈빛을 견뎌내면서도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비교적 덤덤하게 풀어헤친다. 2004년 핸드볼 큰잔치 우승팀의 감독은 우승의 기쁨에 도취된 선수들에게 버럭 화를 낸다. 우승팀에게 돌아오는 것이 고작 '팀 해체'였기 때문에, 선수들의 성취감이 쓰레기통에 처박히게 되는 현실이 너무 싫었을게다. 팀을 해체하는 대신 선수들에게 회사 직워 신분은 보장해 주겠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는 와중에도, 미옥(문소리 분)은 아들에게 고기를 꾸역꾸역 먹이며 감독에게 묻는다. "그래도, 정규직이겠죠?" 불쑥 튀어나온 이 말은 그 시퀀스에서는 웃음이 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녀의 힘든 삶을 녹여 낸 처절한 대사라는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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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미옥 뿐이겠는가. 혜경(김정은 분)은 이혼한 경력이 있는 여자라는 이유로 감독직을 물러나야 했고, 정란(김지영 분)은 선수 시절 경기 출전을 위해 호르몬제로 생리 주기를 맞추다 결국 불임의 몸이 되었다. 그나마 상황이 나아보이는 수희(조은지 분) 역시 받아주는 팀이 없어,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 힘들다. 이들에게 핸드볼은 그저 남들이 즐기는 스포츠라는 의미만이 아니다. "이기든 지든 먹고 살려고 미친 듯이 뛰었어. 나한테는 그게 핸드볼이야." 라는 미옥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 의미는 관객의 마음 속 깊숙히 꽂힌다. 그녀들에게 핸드볼 큰잔치 우승이나 올림픽 출전과 메달은 부차적인 문제다. 시종일관 불화가 일었던 선수촌의 파릇파릇한 젊은 친구들과는 달리, 진열장에 있는 메달을 보며 순금이냐고 묻는 사채업자에게 "도금이에요. 벗겨가시든가!"라고 발악해야 하는 그녀들에게 '삶' 보다 더한 동기는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녀들의 경기는 감동적일 수 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 이겨야 했다. 이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몸과 마음을 불태우는 그녀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무리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나 달리는 그녀들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미옥이 전화로 울먹이며 "미안한데, 난 포기 안할 거거든."이라고 하는 장면이 슬프도록 감동적인 건, 그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녀들의 의지와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상황이 함께 다가오는데서 느끼는 슬픈 위화감 때문이다.

처음엔 어떻게든 '아줌마'들을 내쫓으려고만 했던 엄승필(엄태웅 분) 역시 그녀들의 진심을 알고나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내가 우리나라 아줌마들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습니까?"라는 말은 막 감독이 되어 "유럽식의 효율적인 훈련 시스템"을 운운하던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에는 임순례 감독의 입이 되어 선수들에게 말한다.

"우리, 약속 하나 합니다. 시합에 지더라도 울지 않기로. 여러분은 오늘, 여러분들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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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순간에, 꼭 최고의 위치에 설 필요는 없다고 선수들을 위로한다. 비록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어도, 당신들의 그 아름다운 노력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니, 분명 무언가 바뀌고 보다  나아질 테니 그렇게 믿고, 부디 슬퍼하지만은 말라고 다독인다.

그랬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면, 꼭 최고가 아니더라도 그 결과는 값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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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0 16:33 2008/01/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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