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연: 설경구, 김태희, 서태화, 전수경, 임하룡
제작사: 시네마 서비스
배급사: 시네마 서비스
상영시간: 102분
개봉일: 2007.12.12
20자평: 싸움은 적당히, 그리고 현명하게.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랑그langue는 언어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추상적인 체계를 뜻하는 것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어나 문장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빠롤parole은 실제로 언어 생활을 하면서 나타나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라던가 숨은 뜻 같은 것이다.1
상민(설경구 분)과 진아(김태희 분)는 서로가 참
다른 커플이다. 곤충학자여서 자그마한 곤충들을 들여다보는게 몸에 밴 탓인지 매사가 쫀쫀하기 그지없을 뿐 아니라 강박증까지 있다.
연필들은 깨끗하게 깎여 있어야 하고, 바닥에 떨어진 조금의 치약도 용납하지 못하며,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빵을 먹을 때도
'흘리지 말고 먹어라.'고 당부한다. 반면 활발한 유리공예가 진아는 말 그대로 털털하고 선머슴 같다. 아무리 남녀가 달라서 서로
다른 별에서 왔다고까지 하지만, 이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영화 초반부터 이별 예행연습을 하던 이 커플은 어찌어찌 결혼하기에
다다르지만, 결국 이들은 이혼으로 끝을 보는 듯 했다.
이들이 다시 만나 형사소송에 이르는 무지막지한 싸움판을 벌이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상민이 이혼 한 진아에게 연락해 "너에게 깜빡하고 줬던 시계추 돌려줘!"라는 그야말로 분위기 파악 못하는 시시콜콜한 요구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이 힘들어하고, 헤어지고, 다시 싸움판을 벌이는 모든 일에는 단 하나의 말이 원인이었다.
"미안하다고 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미안하다고 해야 돼!"
상민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진아.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잘못한게 없으니 미안하다고는 죽어도 못하겠는 상민. 다짜고짜 '미안하다'는 말을 강요하는 진아의 행동은 말도 안되는 억지 같아 보이기도 하고, 불같이 달려드는 진아에게 죽어도 미안하다고는 못하는 상민은 왠지 융통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정말 별 것 아닌, 시시콜콜한 문제다. 진아가 조금만 상민을 이해해 줬더라면 굳이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의문이 들고, 상민에게는 그냥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는게 뭐가 어때서 라는 생각이 든다.
허나 이들의 싸움은 서로의 빠롤을 랑그로 표현하면서 오는 충돌이다. 상민(남자)의 입장에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에는 엄청나게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다. 사랑이고 뭐고,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미안하다고 굽히고 들어가는 것은 알량한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죽어도 미안하다고는 못하고 걸핏하면 싸움이 일어나지만, 그 안에는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조그맣고, 조금은 유치한 표현으로나 전할 수 있는 마음이다. 진아(여자)의 입장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정말 그가 잘못해서 들으려는 말이 아니다. 영화의 중반 클라이막스에서 진아가 외친다. "미안하다고 해. 제발. 내가 잘못한게 아니게..." 그의 '미안해'라는 말은 '그래,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위로의 의미이고, 그만큼 상대방이 자신을 보살펴주고 있다는 느낌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 수많은 의미들이 '미안해'라는 말 한 마디에 압축되어 서로에게 전달되었고, 그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늘 커플은 싸운다. 나의 말과 그(녀)의 말은 같지만, 그 안에 있는 말의 의미는 얼마나
다른지! 커플에게 싸움은 곧 서로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캐내어 서로의 빠롤을 일치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상민과
진아의 난투극에 체위를 오버랩시킴으로써 감독은 이 의미를 코믹하게 묘사한다.
사람에게 커뮤니케이션은 얼마나 중요한가. 대화는 그 자체로서도 큰 의미를 갖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의 전달, 교감이 이루어짐으로써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커플들이여, 마음껏 싸우자. 싸우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면, 싸우고, 또 싸워서 서로를 맞춰가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사족1. 그래도 싸우면 서로가 힘들고 지친다.
사족2. 사실 가장 바람직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태화(서태화 분)이다. 사랑하는데에는 이유도 없고, 설사 그 사랑 때문에
슬프고 힘들더라도 그것까지 포용할 수 있음. 그것을 몸소 코믹하지만 진지하게 보여주는 태화. 사랑이란게 그런 거겠지. 남이 볼
땐 아무것도 아니고 웃기는 일이지만 막상 당사자에게는 매우 힘든, 뭐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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