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것의 기원, <배트맨 이어 원>
![]() | 배트맨 이어 원 - ![]() 데이비드 마주켈리.프랭크 밀러 지음, 곽경신 옮김,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세미콜론 DC 코믹스에서 잡지 형식으로 매주 발간하는 <배트맨> 404~407호의 연재분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이번에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이어 원>은 미국에서도 2005년 새로 나온 양장본 디럭스 에디션. |
<배트맨 이어 원Batman Year One>은 영화 시리즈로 치자면 <배트맨 비긴즈> 격이다. 책의 서문에 보면, <배트맨 이어 원>은 DC코믹스에서 자신들의 영웅들을 쇄신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프로젝트에 프랭크 밀러가 참여하면서 배트맨은 보다 디테일하고 현실적이며 다양한 고민을 끌어안은 독특한 영웅이 되었다.
사실 <배트맨 이어 원>은 배트맨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브루스 가의 강도 사건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 브루스 웨인이 가진 박쥐에 대한 공포감이나,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임팩트 있는 장면으로 그려지지만 생각만큼 중요한 흐름을 가지진 않는다. 배트맨이 탄생하고 첫 1년 동안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지만, 특이하게도 배트맨보다 오히려 고든 부서장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애초에 영웅이라는 것은 누군가 그렇게 불러주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초현실적인 히어로들, 예를 들자면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 같은 경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모습이 영상으로 극대화 된 것은 아무래도 스파이더맨일 터인데, 그는 악당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소소하게 때로는 너무나 절박하게 피자 배달을 하면서 생활을 근근히 이어가야 하는 소시민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웅들은 악당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배트맨의 경우는 어떤가? 그는 초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이다. 단지 조금 돈이 많아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수 많은 기계들을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 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1. 슈퍼히어로들 조차 악당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시민에 불과할 뿐인데, 애초에 특별한 힘 하나 없었던 배트맨은 오죽하겠는가. (내부적으로 얼마나 부패했건 간에) 법치국가에서 경찰등의 공권력을 무시하고 스스로 벌을 내리는 어둠의 존재를 어느 정부와 조직이 곱게 봐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여러 의미에서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그러한 존재를 긍정할 수 없다. 오히려 무법자, 혹은 범법자라는 이름을 붙여 잡아들이고 싶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 배트맨이라는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 언제였을까, 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배트맨과 고든 서장이 우정을 쌓기 시작할 때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를 지지하고 그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외적인 존재가 있어야만 배트맨은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배트맨 이어 원>은 배트맨의 고뇌보다, 고든이 배트맨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심리적 묘사가 더 두드러지게 묘사된다. 정의를 지켜야 하지만 가장 부패한 조직인 경찰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야 하는 것, 에센 경사와의 불륜, 조금만 정의로운 일을 하려고 하면 들어오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압력과 협박, 모든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고 흐트러져 있다. 수없이 괴로워하는 그가 배트맨이 차에 치일 뻔한 할머니를 구하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경찰들의 포위망 속에서도 고양이를 구하며, 심지어는 도망가는 와중에 아무도 없는 양복점에서 변장용 옷을 훔쳐가면서도 돈을 지불하는 모습을 봤을 때, 과연 그를 붙잡아야 하는가,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해 고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터였다.
<배트맨 이어 원>은 배트맨의 탄생이라기 보다는 배트맨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결국 고든이 배트맨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배트맨은 영웅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고든은 좀 더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 있는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고든, 당신 덕분에 배트맨이 배트맨일 수 있게 되었어. 내가 그래서 당신을 좋아한다니까.
- 비슷한 예로 <아이언 맨>이 있으시겠다. [Back]


















댓글
2010/01/2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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