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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군의 문화와 인터넷 이야기.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 - 6점
오영욱 지음/예담
여행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건축가 오기사가 그림으로 쓴 여행 스케치. 바르셀로나를 거점 삼아 저가 항공을 활용하여 여행한 16개국 50여 개 도시의 기록을 담고 있다. 각 나라에서 마신 커피와 특별하지 않아서 더욱 특별한 하루를 스케치북과 카메라에 담았다.

오기사의 전작인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가 여행기를 가장한 스페인 생활의 적응기記라고 한다면, 이번 작품인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는 한결 가벼워진 스페인 생활기 + 주변 도시 여행기라고 할 수 있겠다. 가벼워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부연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 그려졌던 전작과 달리 이미 익숙해진 곳에서의 생활과 여행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내용이든 느낌이든 조금 힘이 빠지고 부드러워진 느낌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전에 진지했던 책의 주제가 가벼워졌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란 얘기다. 오히려 한결 편해진 생활 속에서 그의 아픔과 외로움은 더욱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한국에 있을 때와 똑같은 사랑과 이별의 아픔은 물론, 외로움이나 괴로움 같은 소소하지만 우리를 지배하는 감정들까지도.

이래저래 말이 많아도 여하튼
고작 지구라는 작은 행성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일 뿐이다.
- p.138

그렇다보니 이 책의 내용은 여행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분명히 배경은 유럽, 혹은 미국의 어느 곳인데도 오히려 집 앞에 있는 카페에서 끄적거린 소소한 일기 같은 느낌까지 든다. 여행이 주는 처음의 당혹감이나 설렘 같은 것들이 한꺼풀 벗겨지고 나니, 사람 사는 곳은 어느 곳이다 다 비슷한 것이라는 별 것 아닌 명제가 다시금 확인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어느 곳에 있든 고작 지구라는 작은 행성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한결 편해진 이야기들 속에 오기사 특유의 화풍으로 스케치 된 건물들과 재조합된 사진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디에 있든 우리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은 그냥 덤이고.

그저 그곳에서도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해하고
어느 화창한 날 고대와 중세와 근대의 길을 걸으며 뿌듯해하며
새로운 만남에 많이 설레고,
다시 찾아온 이별에 조금 슬퍼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행복해하면 될 뿐이었다.
- p. 356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10/02/14 22:03 2010/02/14 22:03
아메리카, 천 개의 자유를 만나다 - 10점
이장희 지음/위캔북스

우연히 싸이월드에서 "풍경과 함께한 스케치 여행" 라는 이름의 페이퍼를 알게 되었을 때, 참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장희님이 운영하는 이 페이퍼에는 마침 미국 대륙 횡단기가 여정을 표시하는 지도와 함께 연재되고 있었다. 그 횡단기는 사진과 일러스트가 함께 어우러져 있었는데,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오묘함이 거기에 있었다. 일러스트를 보고 있자면 "훔볼트(작가와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를 펭귄화한 캐릭터)"와 함께 떠나는 판타지 소설 같이 느끼다가, 방대한 양의 사진이 이건 명백한 여행기란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여행지로서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워낙 크기도 클 뿐더러, 미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고 해봐야, 뉴욕 타임스퀘어의 높은 빌딩들, 맥도날드, 깐깐한 사람들, 아니면 아예 라스베거스 같은 휘황찬란하고 퇴폐적인 곳, 게다가 부시 아저씨의 (얍삽해 보이는) 얼굴 같은 것 밖에 없으니, 그런거 보러 갈 돈이면 그냥 서울에 있고 말지. 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장희님의 여행기를 페이퍼에서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이장희님이 "미국스러운" 사진이라고 보여주는 것이 좀 의아하긴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왠지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 미래의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여행기는 좀 딱딱한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보다는 여행자들에게 불친절한 여행기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 여행기가 딱 그렇다. 정해진 여정도 없고 그저 출발지와 목적지만 결정되어 있고 발길 닿는대로 흘러가는 여행.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를 보러 가고, 마음에 드는 도시가 있으면 며칠 더 묵으면서 느끼는 것들이 정리된 일기나 수필 같은 여행기. 특히나 이런 느낌의 여행기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느낌이 잘 묻어나기 때문에, 이 여행의 과정에서 겪은 훔볼트의 안타까운 일에 측은지심心 마저 느껴져, 그네들이 슬퍼 바다를 보러 갈 때 나도 함께 가고, 그네들이 드라이브를 하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랠 때 나도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덕분에 그러한 여행의 과정의 느낌들이 가감 없이 여행기 전체에 묻어나 왠지 미국이라는 나라가 내가 알고 있고, 느끼던 곳이 아니라 애수에 휩싸인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과 이곳이 다를 건 또 무언지, 또 다른 곳들과 다르게 생각될 건 또 무언지 싶어진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은 것 같다.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그립고, 조금은 사랑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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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6 23:41 2007/11/1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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