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 그리고 몽골의 역사에 대해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 |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 ![]() 잭 웨더포드 지음, 정영목 옮김/사계절출판사 서양에서는 파괴적인 압제자로, 동양에서는 아시아의 영웅으로. 각각 자신들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던 칭기스 칸을, <몽골 비사>를 바탕으로 서양의 문화인류학자가 15년 동안 현지답사를 통해 새롭게 부활시켰다. 불행했던 초원의 한 사나이가 어떻게 유럽을 오랜 잠에서 흔들어 깨웠고, 어떻게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포괄하는 근대 세계체제를 형성했는지를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
이 책의 서문에 저자는, 자기가 또는 저자의 선대 연구자들이 칭기스칸의, 몽골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장황하게 설명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부터 살짝 놀랐던게, 이토록 엄청난 영토를 점령한 시대의 영웅, 침략가, 혹은 지도자에 대한 역사가 그토록 불완전하고 비밀리에 전달되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유럽 등의 서구에서는 아시아에 지배당했던 사실이 부끄러워 자의던 타의던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고 싶었을 것이고1, 소련, 중국 등의 국가도 유럽과 비슷한 상황에서 몽골의 기운이 다시 펼쳐나가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역사를 다시 들추는 것조차도 두려워할 정도라니, 이건 칭기스칸의 위대함을 역설함에 다르지 않다.
총 3부작으로 나뉘어진 이 책은 저자가 <몽골 비사>를 해석한 칭기스칸과 몽골의 현대사 개론이다. 1부에서는 칭기스칸의 탄생, 몽골족의 대략적인 문화에 대한 설명을 비롯하여 칭기스칸이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칭기스칸의 일대기가 그려지며, 3부는 칭기스칸이 세상을 떠난 뒤의 세계관이 묘사된다.
누구나 그렇듯이 칭기스칸에게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은, 그가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기동력을 앞세운 우수한 군사력이 기반이 되었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세계를 지배하는데에는 한참 모자르지 않은가. 우리 한반도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쿠테타로 왕조가 위협받고 있었는데, 그 수십, 수백배에 달하는 대지에서 칭기스칸에게 반기를 들고자 했던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건 군사력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칭기스칸은 그 시대의 다른 정복자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많이 보였고, 또 그러한 차이점이 그의 세계 정복사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1) 기술자를 최고로 중요하게 여기고, 적의 기술자들을 빠르게 흡수한 점, 2)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한 점, 3) 물자보다는 그 통로를 중요시 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칭기스칸은 이웃 나라를 정복했을 때 지도자는 물론 소위 지주들을 모두 숙청했다2. 하지만 기술자들만큼은 최고로 대우해주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필요한 기술을 적절히 융합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덕분에 초원을 달리는 전투에만 능숙했던 몽골인들이 공성전攻城戰에 유리한 각종 무기들을 개발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종이 제조, 인쇄 기술, 건축 기술 등 이후 세계를 다스리는 데 근간이 되는 다양한 기술들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3.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건, 서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겠다는,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인 모습이다. 보통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게 되면 자국의 문화를 강요하기 마련이다. 문화는 곧 생활과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문화를 점령하는 것이야말로 정신에서부터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4.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인 탄압에 있어 더욱 심한 반발이 일어나는 것일테고. 더군다나 서로 충돌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선, 그 충돌 사이의 절충안을 늘 찾아야 하기 때문에 지도부로서는 매우 골치아픈 일일 것이다. 그런데 칭기스칸은 페르시아, 러시아, 중국 등 자신의 점령한 국가들의 종교를, 즉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 몽골을 따라오는 것을 강요하는 대신, 자신이 그네들에게 맞춰주기 위해 법전을 여러 언어로 함게 기술하거나,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를 존중해주는 지도자에게 굳이 받기를 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장점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기에(물론 그만큼 충돌도 많이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환영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칭기스칸을 높게 평가하는 것 중의 하나는, 물자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물자의 흐름을 통제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를 동북아 허브로 만들겠습니다.'와 같은 모토를 현실화 했다는 점이다5. 일찌감치 물자 자체에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그들의 흐름을 다스리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칭기스칸은 그에 따른 다양한 운송 수단이나 지리적 이점을 수용하고 활용했다. 기존의 정복자들이 단순히 점령한 국가, 도시의 물자를 가져가는데에만 급급한 것에 비하면 이 얼마나 대인배의 모습인지!
이처럼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는) 위대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칭기스칸 같은 인물이 이후엔 적었는지, 아니면 저자가 내세운 흑사병이라는 환경적 요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6, 세계를 지배하던 몽골의 역사는 칭기스칸 이후 한세기 정도 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그 격동의 시기에 다른 나라들의 왕조와 역사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만큼 번성했던 나라와 왕조의 쇠락으로서는 너무 빠르게 진행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너무 비대해진 나라에 걸맞는 지도자의 부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칭기스칸이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기에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쫓아가지 못한 느낌이랄까? 얼마 전에 사라졌다는 칭기스칸의 영기令旗는 어디로 간 것인지, 정말 어느 순간 다시 짠하고 나타나 몽골 민족이 세계의 지배자가 될지, 궁금해진다.
- 저자는 유럽의 작가들이 자신의 지도자를 비판하고 싶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어 칭기스칸을 일종의 대타로 내세웠다는 이론도 펼친다. [Back]
- 이 부분은 약간 공산주의적인 모습이 보이기도 하다. [Back]
- IT가 빈부의 격차를 심하게 한다며 박해하고, 진정 소수의 주머니만 채우는 건설업에만 목매는 2008년 한반도의 어느 대통령과는 사뭇 비교되는 모습이다. [Back]
- (안타까운 과거지만,) 과거 일제시대에 왜 일본이 우리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겠는가. [Back]
- 이런 점이야말로 우리나라 지도부가 배워야 할 게 아니겠는가! [Back]
- 정말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면 그 위기도 어떻게든 헤쳐나가지 않았을까-라는게 나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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