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메뉴 관리자 글쓰기

notice

category

전체 (3333)
Notice (24)
Introduction (47)
Writing (1112)
Translation (755)
Through Another ... (268)
Hobby (22)
Notes (714)
Column (closed) (91)
Scrap (260)
Closed (40)
툴바 보기/감추기
피디군의 문화와 인터넷 이야기.

'로보트'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9/03| 피디| 과연 인간은 로봇보다 우월한가, <3단합체 김창남> (1)
3단합체 김창남 3 - 10점
하일권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크고 작은 일들에 산업용 로봇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한 근미래. 하지만 사회는 지금, 아니 예전보다도 나아진 것이 전혀 없어 보인다.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에 드디어 휴머노이드가 개발되기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그 사회를 그리고 있는 풍경들이 낯설지 않다. 왕따, 재개발, 서민들.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그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근미래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로봇들이 활동하는 SF적인 세계관 속에서도, <3단합체 김창남>의 세계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겠다.

호구. 생긴 것도 그저 그런, 조금 모자란 바보. 덕분에 그는 고등학교에서 왕따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동생도 그런 오빠가 병신같아 보일 뿐,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죽는게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다가도 '죽을 용기도 없어. 꾸역꾸역 숨을 쉬기에도 벅차니까.'라고 말하는 호구는 말 그대로 살아 있어도 삶의 의지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그가, 최초의 휴머노이드, '시보레'의 관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시보레는 로보트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강약도 없는, 그저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에 대해서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로보트. 그리고, 왕따 생활에 혼자 지내던 호구에게 4년만에 짝이 되어준, 로보트. 시보레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로보트라는 태생적인 차이 뿐만 아니라, 완벽한 제 삼자의 관찰자로서 호구의 주변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없이 호구를 따돌리고 때리는 사람들이 나쁘고, 사실 호구는 '착한 사람'같다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던 말을 시보레는 차가운 기계음으로 호구에게 처음 이야기해준다. 차갑다? 아니, 그 순간의 그 말은 호구에게 있어 그 어떤 말보다도 따뜻한 말이었을게다.

그저 관리라는 명목으로 단지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호구의 감정선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해주지 않던 말을, 아무도 내밀어주지 않았던 손을, 너무도 당연한듯이 내밀어주는 시보레에게 호구는 조금씩 감정의 싹을 틔워간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의 세계관은 휴머노이드가 세계 최초로 개발되어 이제 막 테스트를 시작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시보레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감정에 있어서까지 사람과 거의 흡사한 휴머노이드가 나오는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로봇이나 피조물이 아니다. 말 그대로, 프로그램된 대로, 가감없이 상황을 관찰하고 그에 맞는 반응을 보여줄 뿐이다. 애초에 감정 같은 것은 없는 그녀에게 호구가 다른 사람과는 나눌 수 없는 감정의 교류를 시작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다.

시보레가 처음 등장한 때로 돌아가보자. 시보레 개발을 도운 김창남 박사는 시보레가 인간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보레에게는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인격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소개한다. 인간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나, 생각들. 그런데 왜 호구는, 사람이 아닌 시보레에게서 안정과 위안을 얻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아무도, 그에게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로 흘러가보자. 로보트를 사랑한 아버지를 증오하는 안나는 시보레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호구를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자기 아버지의 환영을 보는 듯 해 짜증이 치밀어 올라, 호구에게 묻는다. 왜 로보트 따위에게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너무나 당연한 듯한 호구의 대답은, 이 작품의 전반을 끌어주는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해 줌과 동시에, 그가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이 한번에 가슴을 치게 만든다.

"아무도 없었잖아! 나에게 그런 친절 베풀었던 사람...! 이제껏 아무도 없었잖아!"

종교에서,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따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모습을 본 따 로보트를 만들려 한다. 우리가 로보트를 만들려 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 근간의 한 구석에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우리보다는 우월하지 않은, 최소한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피조물을 만들어내려는 이기심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만 봐도, 인간의 그러한 이기심을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조금 의구심이 든다. 과연 인간은 로봇보다 우월한가? 그럴 수 있을까? <블레이드 러너>에서처럼 '성능'의 이야기는 차치하자. 다만, '인간적인' 로보트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그들에게 주게 될 다른 여러가지 것들, 마치 이 작품의 시보레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인격같은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자. 그들의 눈에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 자신에게 프로그래밍 해준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모순적으로 비쳐지지는 않을까? 과연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너희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9/03 02:22 2009/09/03 02:22
www.flick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