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그리고 홈즈. <셜록 홈즈>
![]() | 셜록 홈즈 - ![]() 가이 리치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제작/배급사: 워너 브라더스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작국가: 미국 상영시간: 128분 개봉일: 2009-12-23 |
어릴 때 제일 처음 읽었던 추리 소설이 셜록 홈즈 시리즈였던 탓인지, 셜록 홈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탐정 캐릭터였다. 그의 뛰어난 관찰/직관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술술 풀어지는 각종 사건들의 전말은 어린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특히 그림 문자 암호 해독 사건을 읽으면서 잠깐이지만 암호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당시엔 '암호학'이라는 말은 몰랐었지만.
대학생이 되어서 완역판이 나온 홈즈 시리즈를 다시 읽으면서도 한참동안 즐거웠었는데, 이번에 영화, 그것도 꽤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된 셜록 홈즈가 나온다길래 꽤 기대를 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는 관찰, 혹은 추리 등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비주얼 요소가 없기 때문에, 어지간히 스토리가 치밀하지 않고서야 영화에서 온전히 재미를 느낄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소설 셜록 홈즈를 생각한다면 좀 실망스럽다. 아니, 당황스럽다는 표현이 맞을까? 가이 리치는 셜록 홈즈를 블록버스터로 만들기 위해 소설의 캐릭터들을 완전히 재해석했다.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을 지닌 동시에 그 엄청난 두뇌를 활용해 격투에도 능한 만능 탐정이 되었고, 왓슨 박사(주드 로 분) 역시 엄청난 호기심으로 사건에 직접 개입하면서 격투까지도 서슴치 않는 호기로운 캐릭터가 되었다. 사실, 영화가 소설과의 접점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것들은 감독의 새로운 캐릭터 해석이라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영화의 초반 시퀀스에서 정통성을 찾으려는 듯, 소설과의 접점, 공유된 세계관을 강조하는 바람에, 남달라진 캐릭터들을 보고 있는 것이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인지, 영화의 내용은 추리에 바탕을 두었다기 보다, 히어로물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배트맨의 옆에 알프레드 집사가 있듯, 셜록 홈즈의 옆에 왓슨 박사가 있는 모습 같았다고나 할까? 마지막에 모든 사건의 진상을 셜록 홈즈가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결되는 것 자체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추리물의 전개 방식이었던 데다가, 그것조차도 연출의 부족함 때문인지 '아, 그렇군.' 정도 밖에는 공감해 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런 식의 전개에서 사건의 전말은 오히려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모리아티 교수의 변화였다. 소설에서 내가 받았던 모리아티 교수에 대한 인상은 꽤 날카롭고 이성적인, 그래서 더 무서운 악당이었다. 셜록 홈즈와 호각을 이룬 유일한 캐릭터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겉과 속이 다른,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섬뜻한 캐릭터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영화에서의 모리아티 교수는 무언가, 게임 캐릭터의 최종 보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진실에서 모리아티 교수의 주도면밀함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 결과 <셜록 홈즈> 2편이 나온다면 추리물에서 한발 더 멀어지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된다.
세계 최고로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를 다듬어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압박 속에서 이 정도의 결과물이 나왔다는 건 나름 감독의 입장에서나 관객의 입장에서나 합격점을 줄만 하다. 특히 셜록 홈즈가 왓슨의 결혼을 질투하는 식의 해석은 영화 본연의 재미에 맛깔 난 조미료를 더한 듯 짬짬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추리물을 기대했지만 예상 외의 블록버스터 액션물을 보게 된 것과, 2편 역시 이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란 예상이 조금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영화였다. 이전에 알고 있던 셜록 홈즈를 조금만 자유롭게 해준다면 말이지.
p.s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에서 나왔던 '아이린'을 등장시킨 것은, 블록버스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남여 주인공의 러브라인 때문인 듯 한데, 아무래도 가장 많이 손봐진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셜록 홈즈가 유일하게 패배한 사건이고, 보헤미아 국왕에게 아이린의 사진을 달라고 할 정도로 나름의 애정(?)을 보이긴 했지만, 영화에서처럼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듯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게다가 저 사건이 끝날 무렵 아이린은 '영국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셜록 홈즈 앞에서 사라졌었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좀 놀랍다. 어쨌든 홈즈를 사건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러브라인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캐릭터가 감독의 목적이었겠지만, 아직도 의심이 드는 것 한가지. 아이린이 이렇게 말괄량이 같은 캐릭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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