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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군의 문화와 인터넷 이야기.

바이바이 베스파 - 10점
박형동 지음/애니북스
<리버 보이>,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독특하고 환상적인 표지 일러스트를 그려온 만화가 & 일러스트레이터 박형동의 단편집.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성장의 의미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섯 가지 클래식 스쿠터와 엮어 그려냈다.

오래 전, 우연히 한 잡지에서 투박한 그림체의 만화를 보았다. 거친 펜놀림 속에서 한가지 톤으로만 이루어진 색감. 캐릭터라고는 무언가 포기해버린 듯한, 소년이라기엔 성숙하고 어른이라 하기엔 미숙한, 그런 느낌의 아이와 어른이 된 듯한 미키마우스. 얼핏 보기엔 별다른 매력도 없고 굳이 누군가를 끌어들이려 애쓰지도 않는 듯한 느낌이 오히려 알 수 없는 매력이 되어 눈을 사로잡았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기승전결 따위는 애초부터 신경조차 쓰지 않은 듯한 건조한 대화들이 신기하게도 눈을 통해 심장으로 전해졌다.

'혹시 어른이 되려는 거니?'

꽤 오래 전이어서 정확히 어떤 잡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하기 전에는 제목조차 가물가물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질책과 동정과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저 대사 한마디가 계속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다. 막연한 느낌으로 소년에서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나는, 저 대사 속에서 그 사이에 있는 과도기적 시간을 알게 되었다. 마치, 소년이라기엔 성숙하고 어른이라 하기엔 미숙한 그런 느낌의 아이처럼.

내려 놓음

다섯 대의 스쿠터에 숨겨져 있는 다섯 개의 이야기들은, 모두 그 과도기 속에서 방황하다 성장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 성장 속에는 무언가를 내려 놓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아픔을 견디거나, 혹은 숨기거나, 혹은 떨쳐낸다. 어쩌면 그(녀)를 사랑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후회, 옛 연인을 기억할 수 있는 좋지 않았던 수많은 기억 속에서 피어난 단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 억지로라도 붙잡고 싶었던 미련 같은 것까지도.

'내가 기타 안 쳐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애정결핍의 여자아이는 꼭 내가 돌보지 않아도 누군가 보살펴줄 사람을 찾아낼 거구
자동차 매연 잔뜩 먹어가며 고장 잘나고 수리센터도 거의 없는
오래된 양철 스쿠터를 타는 건 바보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

내려 놓음, 혹은 진정한 이별.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꿈을 잃는다거나 하는 따위의 거창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단지, 그 무언가의 하나를 내려놓는 것. 그것은 여러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만이 영원하다는 딜레마적인 진리. 그 진리를 외면하고 영원을 찾고 싶어하는 것이 청춘의 아름다움, 매력, 혹은, 추억. 청춘의 방황은 그러한 청춘의 본질적인 태생 때문에 어차피 떼어질 수 없는 것일게다.

'그럼 또 올게. 뭔가 딴 게 돼서말이야. 어른은 말고.'

아, 이 책과 책 속에 있는 다섯 가지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은 저 대사 한 마디로 모두 표현할 수 있다. 무조건적인 영원을 찾아헤매는 청춘과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진리 속에서 안주하는 어른, 그 사이, 혹은, 우리가 눈길을 주지 못하는 다른 세상에 그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 책을 덮고, 상상을 하게 된다. 스쿠터를 타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 도로를 달힌다. 바닷바람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둔다. 그리고 눈물과 함께 무언가를 내려놓으며 묻는다. 조그맣게.

'어른 말고, 뭐가 될 수 있을까?'

Special Thanks to luvflute.

Bonus Track. 아래의 동영상은 이 책의 표제작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인 <바이바이 베스파>를 단편 애니메이션화해서 2007년 서울 컬렉션 BON패션쇼에서 상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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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내리는 마을 7 - 8점
하라 히데노리 지음/대원씨아이(만화)

하라 히데노리의 작품은 <겨울 이야기>로 처음 접했고, 순식간에 이 아저씨의 팬이 되었다. 시기가 시기였기 때문이었을까, 주인공인 히까루에게 나름 꽤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구질구질하고, 궁상맞고, 시쳇말로 찌질함의 대명사. 특별히 멋있다고 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딱히 못난 것도 아닌, 그저 옆 집에 살고 있을 법한 주인공의 모습. 히데노리의 작품들은 대게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하라 히데노리는 '청춘 만화의 1인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듯 하다. 그 수식어를 접하면서, '응, 그런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SOMEDAY>, <언제나 꿈을>, <내 집으로 와요>, <겨울 이야기> 같은 작품들을 접하면서 보면,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들은 대게 20대를 넘어가는 법이 거의 없다. 가장 꿈과 희망이 왕성할 시기, 그렇기에 방황과 고민도 많이 하게 되고, 더 큰 실망을 받고 좌절하기도 한다. 히데노리는 아무래도 그런 청춘 속에 숨겨진 작은 희망 같은 것, 혹은 청춘 그 자체에 대해 남모를 동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히데노리의 가장 큰 장기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궁상의 바닥까지 치닫게 만드는 것인데, 이번 작품도 여지없다. 코타로는 나기사를 좋아하지만 나기사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을 옥죄기만 하는 부모님의 간섭에 숨이 막힌다. 사실 코타로가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데, 다른 픽션에서 주인공이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짠하고 나타나 주인공을 구해줄 법도 한 우연이나 사건 따위는 없다. 그저 궁상만 떨다가 우여곡절 끝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멋진 감동이나 간지 좔좔 흐르는 사건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방황하기만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 리얼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상실될 정도다.

개인적으로 하라 히데노리의 작품을 보다보면 꽤 오래된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 <자살보다 SEX>가 떠오른다. 하라 히데노리와 무라카미 류는 정 반대의 스타일로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생각나는가보다. 무라카미 류는 '연애 따위 최악. 스스로 일어서니 못하는 놈은 연애할 자격도 없다'고 다그치는 반면, 하라 히데노리는 연애, 사랑,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어떤 희망을 재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겠냐마는, 무라카미 류처럼 사는 건 너무 척박하고, 하라 히데노리 속의 주인공들은 늘 참 너무 지지리 궁상을 떠는 것 같아 동정심을 갖게 된다.

하라 히데노리의 작품들을 매우 좋아하고, 이 작품도 그런 기대를 많이 만족해 주었지만 별이 하나 깎인 이유. 왠지 마지막이 후다닥 끝난 느낌이다. 미나코는 어떻게 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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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1 /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2 - 10점
프랭크 밀러 외 지음, 김지선 옮김/세미콜론

1986년 2월부터 6월까지 4호에 걸쳐 ‘4부작 미니 시리즈’로 기획된 <다크 나이트 리턴즈> 는 배트맨 시리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자 팬들의 필독서다. 배트맨의 진면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한국의 배트맨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가장 읽고 싶은 배트맨 만화로 손꼽혀왔다.

그랬다. 사실 참으로 궁금했다.<다크 나이트 리턴즈>라. 왜 '리턴즈returns'가 붙지? 진짜 배트맨 팬들이 들으면 화를 펄펄 낼 생각이었던게다. 이 시리즈로 인해 퇴색되던 배트맨의 매력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후의 시리즈들이 나오는 원동력이 되었을 정도로 일대 획을 그린 작품을 놓고 제목에 갸우뚱거리고 있었으니. 그래도 어쩌겠나, 배트맨 시리즈가 시작되었을 때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고, 어릴 때에는 인터넷이고 뭐고 없었을 뿐더러, 나는 부모님 몰래 만화를 봐야 하는 말 못할 슬픈 고민을 가지고 있는 어린 소년이었을 뿐인걸.

<다크 나이트 리턴즈(이하 DKR)>의 시작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배트맨이 은퇴를 하다니! 돈 많은 아저씨가 은퇴하고 나서 무기력에 휩싸여 어떻게 죽는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인가 따위를 고뇌하고 있는 브루스 웨인이라니! 어디 상상이나 했겠나? 사실 슈퍼히어로물이라는 게 영웅은 언제나 나이를 먹지 않음을, 혹은 시간이 흘러도 아주 조금만 흐르거나, 한창 활동할 전성기의 모습을 그리는 게 당연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다 늙어 체력이 골골거리는 브루스 웨인이라니. 이거 신선하다고 해야 하나, 충격이라고 해야 하나. 조금 헷갈리기는 하네.

사실 생각해보면 배트맨은 생각처럼 '슈퍼'히어로는 아니지 않나. 슈퍼맨처럼 외계인(막상 이렇게 쓰자니 슈퍼맨에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네. 하지만 클라크, 자네 엄밀히 족보 따지면 외계인 맞아.)도 아니고, 스파이더맨처럼 거미한테 물린 적도 없고, 심지어 저 막장 히어로인 핸콕처럼 신과 비슷한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고 X-MEN들처럼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돈이 써도 써도 모자랄 정도로 -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그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 정도로 많은 한 보통 남자가, 수많은 지식과 탐정술, 엄청난 노력으로 얻어 낸 체력과 무술, 그리고 돈과 기술로 무장한 각종 장비들을 들쳐 엎고 다니는 것일 뿐이다.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리 배트맨은 늙고, 병들고,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우리처럼. (다른 히어로들도 그럴 거라고 100번 생각하면 한 번쯤 설득당하겠지만 왠지 그럴거라는 느낌이 잘 안 든다. 나만 그런가?)

그래서인지 <DKR>에서 나오는 배트맨은 이제까지 영화에서 봐 온 그런 히어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좀 더 인간적이었다. 슈퍼히어로들이 시리즈에서 보통 겪는 고난 - 악당이 나타나 세계를 정복하려 드는 -과 달리, 배트맨의 고난은 그보다 훨씬 원초적이었다. 그의 존재는 정의를 기저로 삼고 있지만 법과 도덕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그것은 더욱 강한 적들의 등장이라는 모순점을 늘 끌어안고 있다. 배트맨을,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자경단원들에 대한 합법성 여부가 언론에서 끊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영화 <다크나이트>를 떠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기본적인 설정이랄까 세계관이랄까, 그런 것들은 <DKR>과 <다크나이트>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이 그리고자 했던 배트맨의 양면성은 동일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배트맨에게 빠져든 매력이기에, 나는 일단 두 사람 모두에게 엄지 손가락을 우뚝 세워준다.

그런데 사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놀란 감독이 조금 얄미워지기 시작했다. <DKR>의 브루스 웨인은 이러니 저러니해도 사람이기에 언젠가 해야 할 은퇴를 한 경우이지만, <다크나이트>는 그렇지 않잖은가. 아, 괜히 배트맨에게 주지 않아도 되는 시련을 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캐릭터를 향한 엉뚱한 팬fan심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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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이발소 1 / 삼봉이발소 2 / 삼봉이발소 3 - 10점
하일권 글.그림/소담출판사
하일권 -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졸업. 2006년 PARAN.COM에 『삼봉이발소』 연재로 폭발적 화제를 모으며 만화계에 데뷔했다. 총 조회수 1천만 회에 달하는 많은 사랑을 받은 『삼봉이발소』는 대학생다운 순수함과 대작가의 노련함이 조화된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고, 영화화 진행 중이다.

학교에서 선배가 이 만화를 추천해 줬었다. 한창 파란닷컴에서 연재되고 있을 때였는데, 왠지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면서. 처음엔 그림체도 날카로운 듯 뭔가 끌리지 않고, 내용도 뻔한 클리셰가 예상되는 '외모 바이러스'라니, '형, 이거 별론거 같은데요?' 라고 했었다. 그런데 선배는 이상하게도, 처음에 재미가 없어도 몇 개만 좀 더 보라고 했다. 그럼 분명 좋아할 거라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배가 나를 알아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비(?)를 넘긴 후에는 앉은 자리에서 연재분을 모두 읽어버리고, 다음 편은 언제 나오는 거냐! 라며 악을 써댔으니.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외모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평소 외모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계기'가 생기면 발작 증세를 일으키며 주변 사람들을 공격한다. 평소에도 자신의 외모가 못마땅한 박장미는 자기도 외모 바이러스에 걸릴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 외모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삼봉이를 만나게 된다. 언덕 위의 이발소를 의문의 인간형 고양이 믹스와 함께 운영하는 삼봉. 신비한 힘으로 외모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모습을 본 박장미는 무턱대고 삼봉에게 찾아가 '예쁘게 만들어주세요.'라고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삼봉의 차디 찬 거절. 우여곡절 끝에 박장미는 삼봉의 이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삼봉은 박장미를 예쁘게 해 줄 마음이 없다.

삼봉의 치료는 과격하다. 독하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다.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 때로 사람들이 너무 쉽게 간과하는 그것이다. 일종의 프레임1 효과 때문이다. 온갖 미디어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얼짱, 몸짱 이야기가 쏟아진다. 같은 조건이라면 예쁜 사람이 뽑히는 내용의 영화와 드라마가 비일비재하고, 소위 추녀들이 망가져 웃음을 주는 코미디 프로는 대부분이다. 자연스럽게 예뻐야 살기 편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예뻐지기 위해 다이어트와 각종 시술에 목을 맨다. 적당히라면 괜찮겠지만, 그 정도가 과하다. 오죽하면 불법 성형수술이 이토록 판을 칠까.

똑같은 조건이라면 예쁜 사람이 뽑히는게 당연하겠지. 내가 떨어진 건 내가 못생겼기 때문이야. 나는 못생겼으니까 어차피 안될텐데. 라고 미리 단정지어 버린, 시쳇말로 찌질이들이 외모 바이러스에 걸린다. 삼봉이 하는 치료법은 나타나 하는 것은 '그들에게 현실을 똑바로 쳐다봐, 머저리들아.'라고 독설을 쏘아주는 것이다. 현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회피하고 스스로를 피해주의자로 만드는 주제에, 행복한 인생따위 아무리 예뻐져도 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삼봉이 감염자들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치료법을 행할 때, 자기 키 만큼 거대한 가위로 심장을 찌른다. 아마, 딱 그만큼의 고통이 있을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는데에는.

@사족1.
마지막 반전은 내가 이제까지 본 그 어떤 반전보다도 끝내줬다! ㅋㅋㅋ
@사족2.
하일권의 <3단합체 김창남>이 지금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이다. <삼봉이발소>와 같은, 아픔이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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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허쉬 1 / 배트맨 허쉬 2 - 8점
밥 케인 원작, 제프 로브 글, 스콧 윌리암스.짐 리 그림, 박중서 옮김/세미콜론
2003년 미국 만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프랭크 밀러의 <다크나이트 리턴즈> 이후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배트맨 만화라는 평을 들은 바 있다. 스토리작가인 제프 로브와 밑그림을 그린 재미교포 작가 짐 리의 환상적인 호흡이 이 작품을 근래 DC 코믹스 최대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깔끔한 화면 분할과 빠른 전개, 역동적인 묘사는 만화로 읽은 액션 영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예전에 PiFan에 갔을 때, 장르문학페어Fair가 부대 행사로 진행되고 있었다. 관심이 있던 책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띈 녀석이 바로 이 <배트맨 허쉬>였다. 내가 히어로물을 좋아한다는 점(특히 배트맨, X-MEN, 스파이더맨!), 수 많은 소설 속에 만화책이었다는 점, 무엇보다 미국 히어로물의 정식 한국어판이라는 점 등등등, 이 책이 내 눈에 띄지 않을 이유가 오히려 적었다1.

<배트맨 허쉬>의 배트맨은 과묵하다. 가뜩이나 별로 없는 대화를 제대로 끝내는 것도 드물다. 배트맨의 대사는 대부분이 독백으로 처리되며, 이는 배트맨이 가지고 있는 어둠을 반증한다. 캣우먼과의 로맨스가 지지리도 진도를 못 나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둠을 없애기 위해 빛을 선택하는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더 강한 어둠을 자초하는 히어로. 아, 이게 배트맨의 매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배트맨 허쉬>는 썩 친절하지 않은 작품이다. <배트맨 허쉬>는 배트맨 시리즈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배트맨의 라이벌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스토리 진행과 시리즈물 등의 이유로 자세한 이야기까지 풀어주지 않는다. 거기다가 <저스티스>2에서 인연을 맺었다 하는 슈퍼맨3까지 등장해주니, 어지간한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이놈들은 도대체 뭐야!'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최근에 안 사실인데, '배트맨에 나오는 악당들하고 슈퍼맨에 나오는 악당들하고 싸우면 어떻게 될까?'라는 식의 궁금증은 이미 널리 퍼져 있는지, 이미 이런 세계관이 미국 히어로물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사실 <저스티스>에 대해 몰랐던 나로선 배트맨 시리즈에서 슈퍼맨이 나와서 살짝 당황했었다.

짐 리의 그림은 '도대체 이걸 그리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들었을까'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 있고, 스토리 전개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보통 알려진 영웅 vs. 알려진 악당 사이의 대결이 주인 히어로물에서 정체 불명의 악당을 쫓는 탐정물의 성격이 짙은 <배트맨 허쉬>는 액션과 함께 배트맨의 또 다른 장기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