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 The Great 2008 Seotaiji Symphony (2CD) - 서태지 노래/서태지컴퍼니
이 음반을 통해 록과 클래식이라는 언뜻 상반된 장르가 만나 얼마나 조화로운 사운드를 이루어내는지 느껴볼 수 있다. 록이 가진 강렬함과 클래식의 웅장한 사운드가 하모니를 이루어낸 그 참신성과 독창성 그리고 실험정신으로 대중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 공연실황을 담았다.
뭐, 말이 필요없씀!
Special Thanks to 동생님.
Tracks [ CD 1 ] 1. Take One Prologue 2. Take One 3. Take Two 4. F.M Business 5. 인터넷 전쟁 6. Moai 7. 죽음의 늪
[ CD 2 ] 1. T'Ik T'Ak Fantasia 2. T'Ik T'Ak 3. Heffy End 4. 시대유감 5. 영원 6. 교실이데아 7. Come Back Home 8. 난 알아요 Adagio 9. 난 알아요
우연히 보게 된 <유성의 인연>. 예고편에서 보면 초반에 잘생긴 청년이 진지하게 말한다. '어른이 되면 범인을 찾아서, 셋이서 죽여버리자.' 무엇이 이 잘생긴 청년을 분노하게 만드는가. 어린 시절, 삼남매는 사자자리 유성우가 떨어지는 걸 보고 싶었지만 어린 아이들끼리 나가면 위험하다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한밤중에 몰래 집을 빠져나가 그토록 소원하면 유성우를 보게 되지만, 그 시각, 집에서 부모님이 살해당한다. 범인을 찾아 죽여버리자고 다짐하는 이는 이 삼남매의 장남, 아이아케 코이치(니노미야 카즈나리 분)다.
간단한 시놉시스와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서, 꽤 진지한 추리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거 추리물은 추리물인데,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삼남매의 장남인 코이치는 오직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만 생각하고 살아와서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지만 내면은 아직 어린 아이의 상태로 남아 있는 탓에 조그만 일에도 쉽게 삐치는 등 시쳇말로 '초딩'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즈나(토다 에리카 분)는 오빠들의 애정을 담뿍 받고 자라서인지 코이치와는 다른 의미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벗지 못했다. 그나마 제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은 차남인 다이스케(니시키도 료 분) 정도랄까.
드라마의 초반에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살인 사건의 전말과, 삼남매의 조직성에 대한 모습이 적당한 긴장감, 진지함과 코믹함이 적절히 섞여서 묘사된다.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이네들의 행동은 (범인을 쫓을 때 이외에는) 덩치만 큰 어린 아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처음이어서 그런지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모습은, 시즈나가 고액의 자격증 교재를 신청하는 사기를 당했을 때였다. 안내문의 '연 수입 천만엔도 가능!'이라는 문구에 다이스케가 말한다. "교통카드 천만엔 충전할 수 있어! 룸싸롱 지명료가 천엔이니까... 만 명을 지명할 수 있는거야, 형!"
보라, 다이스케의 이 천진난만한 눈빛을.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시즈나. 자신은 꿈을 위해 교재비를 냈는데, 기껏 한다는 말이 교통카드를 충전할 수 있다느니, 규동집에 가서 매일 만엔어치 씩 먹을 수 있다느니, 이런 말만 하는 오빠가 어지간히 짜증이 났다. "시끄러워! 그 빈곤한 금전 감각은 대체 뭐야? 만명한테 차여라!"
시이나 분노 폭발!
하지만 이 삼남매의 초딩 파워의 최강자는 뭐니뭐니해도 장남인 코이치. 자기가 하는 말을 안 들어준다고 삐치거나, 개그치고 혼자 재밌다고 낄낄거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귀엽다. 극강은, 자신들의 성 '아리아케アリアケ"를 따서 마크를 만들고 그걸로 스티커를 만들어서 동생들에게 짜잔-하고 보여줬는데, 동생들이 '뭥미?'라는 반응을 보이자 혼자 뛰쳐나가서는 분노하던 장면.
고개 숙인 그대, 코이치여!
이런 모습들에 솔직히 조금 많이 놀랐었다. 오프닝 시퀀스의 진지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드라마가 진행되어서, '이거 혹시, 코미디였던 건가요!'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에피소드들이 재미있는 데다가, 토다 에리카가 나오니 흐믓하게 드라마를 봐주었는데, 중반부를 지나면서 범인과 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어느샌가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다. 코미디의 코드가 나와 잘 맞았던 데다가1,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모습들에서 추리물의 매력도 충분히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화에서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에서, '14년 전 사건을 해결하면서 반전을 넣을 생각을 하다니! 이 천재 작가 같으니라고!'를 외쳐줄 수 밖에 없었다.
드라마를 워낙 재밌게 본 탓에, 별 관심이 없었던 일본 추리물,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미 유명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크게 관심을 줄만한 꺼리를 찾지 못했었는데, 이 드라마를 통해, 아마 조만간 원작 소설을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셜록 홈즈 - 가이 리치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제작/배급사: 워너 브라더스사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작국가: 미국
상영시간: 128분
개봉일: 2009-12-23
어릴 때 제일 처음 읽었던 추리 소설이 셜록 홈즈 시리즈였던 탓인지, 셜록 홈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탐정 캐릭터였다. 그의 뛰어난 관찰/직관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술술 풀어지는 각종 사건들의 전말은 어린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특히 그림 문자 암호 해독 사건을 읽으면서 잠깐이지만 암호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당시엔 '암호학'이라는 말은 몰랐었지만.
대학생이 되어서 완역판이 나온 홈즈 시리즈를 다시 읽으면서도 한참동안 즐거웠었는데, 이번에 영화, 그것도 꽤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된 셜록 홈즈가 나온다길래 꽤 기대를 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는 관찰, 혹은 추리 등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비주얼 요소가 없기 때문에, 어지간히 스토리가 치밀하지 않고서야 영화에서 온전히 재미를 느낄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소설 셜록 홈즈를 생각한다면 좀 실망스럽다. 아니, 당황스럽다는 표현이 맞을까? 가이 리치는 셜록 홈즈를 블록버스터로 만들기 위해 소설의 캐릭터들을 완전히 재해석했다.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을 지닌 동시에 그 엄청난 두뇌를 활용해 격투에도 능한 만능 탐정이 되었고, 왓슨 박사(주드 로 분) 역시 엄청난 호기심으로 사건에 직접 개입하면서 격투까지도 서슴치 않는 호기로운 캐릭터가 되었다. 사실, 영화가 소설과의 접점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것들은 감독의 새로운 캐릭터 해석이라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영화의 초반 시퀀스에서 정통성을 찾으려는 듯, 소설과의 접점, 공유된 세계관을 강조하는 바람에, 남달라진 캐릭터들을 보고 있는 것이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인지, 영화의 내용은 추리에 바탕을 두었다기 보다, 히어로물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배트맨의 옆에 알프레드 집사가 있듯, 셜록 홈즈의 옆에 왓슨 박사가 있는 모습 같았다고나 할까? 마지막에 모든 사건의 진상을 셜록 홈즈가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결되는 것 자체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추리물의 전개 방식이었던 데다가, 그것조차도 연출의 부족함 때문인지 '아, 그렇군.' 정도 밖에는 공감해 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런 식의 전개에서 사건의 전말은 오히려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모리아티 교수의 변화였다. 소설에서 내가 받았던 모리아티 교수에 대한 인상은 꽤 날카롭고 이성적인, 그래서 더 무서운 악당이었다. 셜록 홈즈와 호각을 이룬 유일한 캐릭터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겉과 속이 다른,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섬뜻한 캐릭터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영화에서의 모리아티 교수는 무언가, 게임 캐릭터의 최종 보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진실에서 모리아티 교수의 주도면밀함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 결과 <셜록 홈즈> 2편이 나온다면 추리물에서 한발 더 멀어지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된다.
세계 최고로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를 다듬어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압박 속에서 이 정도의 결과물이 나왔다는 건 나름 감독의 입장에서나 관객의 입장에서나 합격점을 줄만 하다. 특히 셜록 홈즈가 왓슨의 결혼을 질투하는 식의 해석은 영화 본연의 재미에 맛깔 난 조미료를 더한 듯 짬짬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추리물을 기대했지만 예상 외의 블록버스터 액션물을 보게 된 것과, 2편 역시 이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란 예상이 조금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영화였다. 이전에 알고 있던 셜록 홈즈를 조금만 자유롭게 해준다면 말이지.
p.s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에서 나왔던 '아이린'을 등장시킨 것은, 블록버스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남여 주인공의 러브라인 때문인 듯 한데, 아무래도 가장 많이 손봐진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셜록 홈즈가 유일하게 패배한 사건이고, 보헤미아 국왕에게 아이린의 사진을 달라고 할 정도로 나름의 애정(?)을 보이긴 했지만, 영화에서처럼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듯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게다가 저 사건이 끝날 무렵 아이린은 '영국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셜록 홈즈 앞에서 사라졌었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좀 놀랍다. 어쨌든 홈즈를 사건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러브라인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캐릭터가 감독의 목적이었겠지만, 아직도 의심이 드는 것 한가지. 아이린이 이렇게 말괄량이 같은 캐릭터였나?
카네기 인간관계론 (포켓사이즈) - 데일 카네기 지음, 최염순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1937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전 세계 수천만 사람들에게 행복한 인간관계를 위한 성공적인 원리를 전해왔다. 마음을 열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진심으로 따르게 하는 인간경영의 노하우는 모든 것에 우선한다.
거의 10여년 전에 읽었던 책을, 새삼 꺼내서 읽었던 이유는 최근 느꼈던 스트레스도 한 몫 했다고 본다. 점점 많은 사람들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필요불가결한 운명이라면, 스트레스 받으며 사는 것보다 기왕 하는 것 좀 더 즐겁게, 잘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인간관계에 있어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내 편으로 만들거나, 혹은 내가 원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례들과 원리들이 서술되어 있는 책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좀 사기꾼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인상이 되는 것 같은데, 실제로 사람을 조종한다거나 다루기 위한 기술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보통 이런 류의 책들을 보고 나면 '뭐야, 뻔한 얘기잖아?'라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이 책에서도 색다르고 획기적인, 한 번에 인간관계를 좋아지게 만드는 드래곤볼이나 도깨비 방망이 같은 방법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방법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이름을 기억해주고, 관심을 보이며,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 등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나, 혹은 우리는 이 기본적인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왜 나는 그토록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으면서 힘들어하기만 했던가, 라는 자괴감 같은 것.
예전엔 그래서 이런 책들을 읽는 것을 기피했었다, 시간 낭비라며. 그런데 이렇게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이지만 잊고 있던 것, 정리되지 않아 허공을 떠다니던 나의 잔재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리하는 데 좋을 것 같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트맨 이어 원 - 데이비드 마주켈리.프랭크 밀러 지음, 곽경신 옮김,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세미콜론 DC 코믹스에서 잡지 형식으로 매주 발간하는 <배트맨> 404~407호의 연재분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이번에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이어 원>은 미국에서도 2005년 새로 나온 양장본 디럭스 에디션.
<배트맨 이어 원Batman Year One>은 영화 시리즈로 치자면 <배트맨 비긴즈> 격이다. 책의 서문에 보면, <배트맨 이어 원>은 DC코믹스에서 자신들의 영웅들을 쇄신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프로젝트에 프랭크 밀러가 참여하면서 배트맨은 보다 디테일하고 현실적이며 다양한 고민을 끌어안은 독특한 영웅이 되었다.
사실 <배트맨 이어 원>은 배트맨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브루스 가의 강도 사건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 브루스 웨인이 가진 박쥐에 대한 공포감이나,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임팩트 있는 장면으로 그려지지만 생각만큼 중요한 흐름을 가지진 않는다. 배트맨이 탄생하고 첫 1년 동안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지만, 특이하게도 배트맨보다 오히려 고든 부서장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애초에 영웅이라는 것은 누군가 그렇게 불러주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초현실적인 히어로들, 예를 들자면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 같은 경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모습이 영상으로 극대화 된 것은 아무래도 스파이더맨일 터인데, 그는 악당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소소하게 때로는 너무나 절박하게 피자 배달을 하면서 생활을 근근히 이어가야 하는 소시민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웅들은 악당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배트맨의 경우는 어떤가? 그는 초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이다. 단지 조금 돈이 많아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수 많은 기계들을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 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1. 슈퍼히어로들 조차 악당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시민에 불과할 뿐인데, 애초에 특별한 힘 하나 없었던 배트맨은 오죽하겠는가. (내부적으로 얼마나 부패했건 간에) 법치국가에서 경찰등의 공권력을 무시하고 스스로 벌을 내리는 어둠의 존재를 어느 정부와 조직이 곱게 봐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여러 의미에서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그러한 존재를 긍정할 수 없다. 오히려 무법자, 혹은 범법자라는 이름을 붙여 잡아들이고 싶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 배트맨이라는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 언제였을까, 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배트맨과 고든 서장이 우정을 쌓기 시작할 때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를 지지하고 그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외적인 존재가 있어야만 배트맨은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배트맨 이어 원>은 배트맨의 고뇌보다, 고든이 배트맨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심리적 묘사가 더 두드러지게 묘사된다. 정의를 지켜야 하지만 가장 부패한 조직인 경찰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야 하는 것, 에센 경사와의 불륜, 조금만 정의로운 일을 하려고 하면 들어오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압력과 협박, 모든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고 흐트러져 있다. 수없이 괴로워하는 그가 배트맨이 차에 치일 뻔한 할머니를 구하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경찰들의 포위망 속에서도 고양이를 구하며, 심지어는 도망가는 와중에 아무도 없는 양복점에서 변장용 옷을 훔쳐가면서도 돈을 지불하는 모습을 봤을 때, 과연 그를 붙잡아야 하는가,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해 고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터였다.
<배트맨 이어 원>은 배트맨의 탄생이라기 보다는 배트맨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결국 고든이 배트맨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배트맨은 영웅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고든은 좀 더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 있는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고든, 당신 덕분에 배트맨이 배트맨일 수 있게 되었어. 내가 그래서 당신을 좋아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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