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지음/이성과힘 70년대 암울했던 우리 사회의 현실을 우화적 기법으로 형상화해낸 걸작.
몇 해 전, 방 책장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내 책장의 책들을 죽 훑어보시다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시곤,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걸 지금 네가 읽을 만큼 컸구나."라고 하셨다. 순간 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내가 입학한 대학에서 소위 '신입생이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고, 나는 학점 때문에 억지로 이 책을 읽었어야 했다. 난해한 구조와 내용을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도 들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꼭 다시 읽어야겠다고 몇 번 다짐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나는 이 책을 그 때보다 훨씬 더, 슬프게 읽게 되었다.
올해 1월, 나라는 시끄러웠다. 용산 지역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철거민들과의 충돌, 경찰과 용역들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들.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다고 보여지는 이 사건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싸워야 했던 사람들이 21세기를 바라보는 이 순간에도 있었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는 불특정 다수에게 번지고 시간이 지나며 흐려졌고, 결국 또 누군가의 책임론으로 역사 속에 사라졌다.
1970년대, 난장이가 살고 있는 행복동이 재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난장이를 비롯한 일대의 사람들은 강제철거민이 되었다. 500년 된 집이 문서 한 장으로 사라져야 하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그들에게, 그 보상이랍시고 떨어지는 입주권에는 더 큰 대가가 요구되어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한다. 그 대가로 떨어지는, 싯가의 반도 채 안되는 금액은 난장이 가족들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모습마저 빼앗아갔다.
곤두박질치는 세계 경제 속에서, 국가는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발악을 해대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가관이다. 비정규직 계약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청년인턴'이란 허울좋은 말로 포장해 전국민의 비정규직화라도 하려는 것 같다. 국토운하 건설한다는 건 하도 여론의 반발이 심하니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착공식도 하지 않고 경인운하개발을, 이미, 시작했다. 그래놓고 나중에는 취업률이 어떻느니, 경제가 살아났느니 지껄이겠지. '이집트가 망하지 않은 이유는 끊임없이 피라미드를 건설했기 때문'이라며 건설업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운운하는 걸 세계적으로 비꼬고 있다는 걸, 우리나라 윗분들만 모르는 걸까? 그도 아니라면, 어떤 절대자가 죽지도 않은 경제가 죽었다고 길길이 날뛰자 '경제는 살리겠다'고 해서 온갖 도덕적, 법적 문제가 의문시 되는 사람에게 높은 지위를 준 국민들에게 반성하라고 벌을 내리고 있는 걸까?
행복동에서 쫓겨난 난장이 가족들은 은강시로 돌아가 온갖 굳을 일을 도맡아해야 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극명한 대립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생존비도 되지 못하는 돈을 받으며 그들은 살아야 했다. 법, 윤리, 평등 따위의 것들은 이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 혹은 경제 발전의 적이었다. 아무도 그들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았고, 온갖 비인간적인 모습들이, 기계의 부품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 모습들이 공장 안에서 자행되고 있음에도 사용자들은 그것을 바로 보려 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무너진 노사간의 대화를 비롯하여 사회적, 인간적으로 난장이와 난장이의 가족들이 받는 핍박을 과연 어디의 누가 보상해 줄 수 있겠는가. 극단적인 단절. 연작 소설의 곳곳에서 보여지는 사용자/노동자 사이의 공간의 단절은 곳 사회적 지위와 계급의 단절이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세웠다. 그런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었다. - p.77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결국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는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을 당한다. 사회의 핍박을 이기지 못해 공장 굴뚝에서 자살한 난장이와 같고도 다른 죽음이다. 난장이는 산업 사회로의 시대적 과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너무 급격한 변화였다. 가진 자들은 변화의 속도를 자신들에게 맞추었고, 세상은 그 속도에 맞게 변화해 갔다.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난장이는 도태될 수 밖에. 영수는 본격적인 산업 사회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서클을 만들고, 사람들을 계몽하려 노력한다. 폭탄을 만들어 사용자들을 벌하려 하다가도, 폭탄은 애꿎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에 포기하고, 파업 운동 과정에서 공장의 기계를 부수려는 과격파들을 뜯어 말리기도 할 정도로 차분하고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결국 영수가 살인을 저질렀던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극단적 반발의 모습이었다. 난장이의 죽음과 영수의 죽음은 과정은 다르지만 결국 그 원인은 모두 매한가지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첫 작품인 <칼날>이 1975년에 발표되었다. 지금은 2009년. 30년도 넘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다. 1980, 1990년대를 거치면서 그토록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 슬픈 것은 난장이의 모습이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칼날>의 신애처럼 난장이에게 연민을 느끼고, 우리 모두가 '난장이'라며 슬퍼해주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 고기>의 경호와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판을 치고 세상을 쥐락펴락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난장이는 없다고 말하는 허울 좋은 말들에 설득되고 그들을 잊어가고 있다는 것. 진실로 <우주 여행>에서처럼,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러한 세상은 지구 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걸까? 나는, 세상이, 무섭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 p.87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나는 참으로 오랫만에 죽고 싶다, 고 누군가에게 말했다. 죽고 싶다, 고 백날 말해봐야 나는 내 손목 하나 그을 수 없는 겁장이란 걸 깨달은 사춘기를 거치고선,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말이다.
K는 내게, 넌 진짜 죽고 싶은 사람들을 못 봤지? 라면서 복에 겨운 소리 하지 말라는 경멸의 눈초리로 나를 깔아뭉겠다.
나는 그의 말에, 감정은 상대적인게 아니고, 그럴 수도 없고, 게다가 그딴 식으로 자위하는 건 오히려 감정의 폭력이다- 라고 맞받아쳐주고 싶었지만, 나도 한때 그런 소리를 지껄인 적이 있었기에 그의 기분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속 빈 웃는 얼굴로, 그렇지? 라며 넘겨버렸다.
나는 참으로 오랫만에 죽고 싶다, 고 누군가에게 말했고, 사춘기가 지났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이후에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말을 다시 내뱉는 순간, 누군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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