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위하여,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 |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 ![]() 알리샤 C. 셰퍼드 지음, 차미례 옮김/프레시안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두 기자, 그들의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색을 담은 책이다. 그 어떤 기자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소한 사건, 워터게이트. 이 사건 안에 미국의 최고 권력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무너뜨릴 거대한 비리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번스틴은 <워싱턴 포스트>를 든든한 우군 삼아 사건을 집중 보도한다. |
요즘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먼저 나오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낚시성 제목들로 일단 클릭부터 유도하고 보는 온라인판 뉴스들, 같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축소, 확대해 왜곡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드는 논조, 훨씬 더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의 가십거리 따위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려는 노력, 동어반복과 각종 인터넷 매체의 내용을 짜집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 글을 '기사'라는 타이틀로 공개하는 한심함에 각종 SNS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마치 독자들인 양 위장하고 자신들의 기사를 퍼뜨리는 기만술에 이르기까지. 한때나마 기자가 되기를 꿈꿨던 시절이 있던 탓일까,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분노보다는 안타까운 연민이 먼저 다가오곤 한다.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은 미국 정치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평가받고 있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아직 살아 있는 두 명의 신문 기자의, 일종의 전기가 쓰여졌다는 것이. 이러한 책이 나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드스틴(우드워드+번스틴)이 얼마나 영웅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지, 이들이 언론계에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단지 우드스틴의 개인사, 혹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취재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미국 언론계에서 벌어지는, 혹은 벌어졌던 일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에도 무척이나 흥미가 생긴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을 몇 가지만 나열해보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 우선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미국 언론의 정치부 기자들은 정부, 즉 백악관에서 공표하는 입장을 지면으로 옮기는 일만 수행했다. 백악관측이 일부러 언론사들의 기사 마감 시간 직전에 보도자료를 돌리는 등의 작업도 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자들이 정부의 발표 외에 무언가를 더 알아보려는 마음조차 없었던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에도 정부는 잡힌 범인들 가운데 쿠바인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등 백악관과의 연관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했고, 기자들은 그 입장을 그대로 신문 지면에 옮겼다. 하지만 우드스틴은 '무언가'를 직감하고 끝까지 파고들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밝혀진 사실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뛰어다녔다. '기자'의 본질이 무엇인가? 정부의 공식 발표문을 신문으로 옮기는 속기사일 뿐인가? 그렇지 않으면 진실을 밝히고 그것을 알리는 사람들인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우드스틴들이 동료들을 강하게 비판했던 것 중의 하나도 바로 이런 모습들이었다.
번스틴은 스물아홉 살, 우드워드는 서른 살이었다. 그들이 당시에 비판하고 있던 동료 기자란 대게 그들보다 10년 또는 20년이나 나이가 많았다. 우드워드는 자기가 한 일이 대단히 특별하거나 그대로 따라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기자단이 정부의 공식 발표문 이상을 보도하는 걸 완전히 망각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 뿐이었다.
- p. 159, <4장. 밀려드는 요구>
물론 이러한 활동은 데스크가 뒤에서 우드스틴을 든든하게 지켜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지방의 작은 절도로 치부될 뻔한 사건을 백악관과 연관시키는 것 자체가 보통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백악관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각종 언론사들은 정부의 편에서 기사를 썼지, 그것을 의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책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1972년은 대통령 선거 시즌의 최고 정점이었기 때문이며, 그때 미국 신문의 절대 다수가 닉슨의 재선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p. 104)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권력자에게 진실을 밝히라며 반기를 들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도 워싱턴 포스트의 데스크는 우드스틴에게 워터게이트 사건에만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을 제공해 주었고, 또 이들의 기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다양한 취재원을 통한 사실 확인 등 주의를 기울이기 위한 그들만의 규칙 같은 것은 존재했지만, 기본적으로 데스크는 기자들을 믿었고, 또 진실을 발표하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닉슨 정부는 보복성이 짙은 트집을 잡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포스트는 꿋꿋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퓰리처 상을 받은 것이 우드스틴이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인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우드스틴, 특히 우드워드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큰 점은, 사실만을 보도하고 책으로 배포하는 우드스틴의 치밀한 정직성이다. 물론 우드워드도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고 한 번 오보를 냄으로써 크게 곤욕을 치른 성장통을 겪었다. 하지만 초창기의 그러한 성장통을 끊임없이 와신상담했을까, 이후 우드스틴은 어떤 기사나 책에서 '내용의 진실성'에 대해서만큼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늘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등 다른 사람들의 몇 배나 되는 치밀함을 보였다. 우드스틴의 워터게이트 보도 이후, '익명의 제보자'를 기사에 사용하는 것이 당연시되면서 기사의 진실성에 타격을 받았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것 때문에 우드워드가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익명성에 기대어 '기사'가 아니라 '소설'을 써 독자를 기만한 그 기자가, 또 그런 기자를 용인하고 있는 언론사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애초에 '기자'는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 신문이 죽고 사는 것은 거기에 실리는 기사의 진실성에 달려 있다. 기자의 유일한 화폐는 진실이고, 신문의 유일한 재산은 독자에 의해 축적된 신뢰이다.
- p. 337, <9장. 미스터 카르트 블랑슈>
얼마 전에 PRO PUBLICA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최근 언론사들은 루퍼트 머독과 같은 언론 재벌이 등장하고, 광고 등에 좌지우지됨으로 인해 기사의 진실성이 퇴색되고, 온라인화 되면서 각종 가십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들이 난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켄 올레타도 <구글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에서 "그러나 래리 페이지도 한탄했듯 방문자를 늘려주는 기사들은 대게 '브리트니 스피어스 무너지다' 혹은 '제시카 심슨 몸무게 늘다'등 기자들이 쓰고 싶어하는 글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현상을 보다 못한 일부 기자들이 나와서 만든 언론사가 바로 PRO PUBLICA라고 한다. "공익을 위한 저널리즘Journalism in the Public Interest"을 모토로 내세운 이들은 광고 등에 연연하지 않기 위해 기부금으로 운영되며,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각종 탐사보도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2010년과 2011년에 2년 연속 퓰리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모두가 진실을 원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PRO PUBLICA와 같은 언론사가 나타나 죽어가고 있다는 평을 받던 탐사보도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진실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드스틴'과 그들이 남긴 언론의 의미와 힘은 아직도 여러 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