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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군의 문화와 인터넷 이야기.

다크나이트
원제: The Dark Knight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커트, 게리 올드만, 마이클 케인, 매기 질렌홀, 모건 프리먼
배급사: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상영시간: 152분
상영시간: 2008.08.06

<배트맨 비긴즈>는 신선했다. 여느 다른 히어로물과 달리 주인공 - 배트맨의 탄생에 있어 오는 다양한 심리적 갈등과 고뇌에 초점을 맞추었었다는 점이 내게는 신선했고, 또 그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답다고 생각했었다. 이전 배트맨 시리즈 역시 재미 있었지만, 보여주고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의 초점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지난 배트맨들은 약간 판타지성이 강했었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좀 더 모던modern해진 느낌이어서, 정말 고담시 어딘가에 브루스 웨인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번 <다크나이트>에서는 정말 당장 박쥐가 튀어나올 것 같은 동굴에서 벗어나 최첨단 시설로 갖추어진 배트맨 동굴의 모습이나, 람보르기니를 타고 도시를 질주하는 모습들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해준다1.

처음엔 <다크나이트>가 부제인 줄 알았다. 당연히 제목은 '배트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감독은 굳이 배트맨의 별명인 '다크나이트'를 타이틀로 걸었던 걸까?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전 시리즈물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이려나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자 이건 완전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아, 그래서 '다크나이트(밤의 기사)'를 제목으로 썼구나.

조금만 검색해보면 요즘 <다크나이트>는 블록버스터물의 평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나도 물론 이 영화에 엄지손가락 두 개 정도야 가뿐하게 올려줄 수 있다. 왜일까? <다크나이트>는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이라고 하면 그저 치고 박고 싸우는 액션씬에, 얼마나 호쾌하게 셋트를 날려버리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편견을 한 방에 날려주었다2. 화려한 액션과 셋트장, 관객들의 눈이 돌아가게 만드는 각종 아이템들을 뒷받침하는 건 무엇보다 탄탄한 이야기구조와 그 속에 담긴 드라마다.

보통의 히어로물이 갖는 고뇌는 대게 '히어로, 혹은 슈퍼 파워super power는 존재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 그나마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들추었던 것은 <스파이더맨> 정도였는데, 스파이더맨이 가진 고민 - 엄청난 힘에 뒤따르는 책임감 - 은 배트맨의 고민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민다. '영웅의 존재.' 자, 과연 영웅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이런 질문을 (혹 주변에 영웅이 활동하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해보자. 도대체 이 또라이는 왜 이런 질문을 할까? 하는 눈빛이 되돌아올 것이다. 사람들은 영웅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가 악당과 싸워 이겨주기를 원한다. 그럼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워질 거고, 그걸로 해피 엔딩. 자, 그럼 왜 그 수많은 히어로물의 시리즈들은 끊이지 않고 나오면서 히어로들을 좀 편하게 쉬게 하지 못하는 걸까?

예전에 <핸콕> 리뷰를 쓰면서 이런 문장을 남긴 적이 있다.

물론 슈퍼 영웅의 이름을 콕 찝어 들먹거리며 맞짱을 뜨자고 쌩난리를 치는 악당들의 존재는 잠시 잊어두자. 애초에 슈퍼 영웅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조용히 살았을지도 모를 녀석들이니.

어쩌면, 어쩌면 영웅이 없었더라면 대악당들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히어로물들을 되새겨보면, 보통 히어로의 탄생/각성 - 대악당의 출연 - 결투 - 정의의 승리 구도를 쫓아간다. '그게 뭐?'라고 물으신다면, 생각해보자. 첫 고리인 '히어로의 탄생'이 없었더라면 대악당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크나이트>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영웅의 존재에 대한 의문. 과연 영웅이 온 힘을 다해 악당들을 소탕하면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평화로운 날이 올 것인가?

<다크나이트>의 대답은 'No.'다. 단순히 배트맨이 '어둠'을 선택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필요악'의 존재를 인정하며, 지지하는 모습까지도 보인다. 배트맨(크리스찬 베일 분)과 하비 검사(아론 에커트 분)가 고담시의 악당들을 말 그대로 '싹쓸이'하려고 하자 조커(히스 레저)는 악당들의 대장들을 그의 방식대로 소집해 배트맨에게 대항한다. 알프레드(마이클 케인 분)가 웨인에게 '선을 넘지 말라do not cross the line.'고 충고했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적당히 소탕해서 그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는데, 너무 과했더니 오히려 달려든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의 콧잔등을 물었다. 그런데 이 쥐가, 죽을 힘을 다해 물으니 고양이가 주춤한다.

도시에 영웅과 악당의 공존이 불가피한 것은, 인간의 내면이 근본적으로 선악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배트맨은 평화로운 고담시를 위해 거짓과 위선을 선택하고, 하비 검사는 투페이스가 된다. 조커의 함정이었던 보트 게임에서 악인들과 보통 사람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배트맨은 그들을 지키기 위해 경찰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선악의 경계는 이미 무너진지 오래이고, 오히려 그것들은 서로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알프레드마저도 웨인에게 진실을 숨기지 않았는가. 심지어 조커는 '같이 놀기 위해' 기회가 있음에도 쉽사리 배트맨을 죽이려 들지 않는다. 완전한 악당의 소탕, 완전한 정의는 꿈과 희망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굳이 되새겨준다. 아, 참 멋진 감독이다, 크리스토퍼. 이 사람은, 인간의 양면성을 극대화시켜 영상으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듯 하다. <메멘토>에선 그런 모습이 강하게 어필된 것은 아니지만, <인썸니아>에서는 얼마나 섬찟했었나.

빛이 있기에 생기는 어둠. 그 어둠 때문에 더 밝아지는 빛. 마치 <매트릭스>를 연상케하는 철학적 문제로의 도전.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슈퍼 히어로가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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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한편으론 부럽다. [Back]
  2. 물론 이전에 <매트릭스>(워쇼스키 형제 감독, 1999년)도 있긴 했지만.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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