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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군의 문화와 인터넷 이야기.

동일한 일을 두고도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초콜렛을 먹고도 맛이 있다고 하는 사람과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똑같은 말을 듣고도 즐거워 하는 사람과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떤 사람을 보고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는 혐오한다.

여기 두 권의 책은 이처럼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살인. 살인자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모니카 수녀의 입을 빌려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하고, 편지는 다케시마 나오키가 근무하는 회사 사장의 입을 빌려 (살인자는 물론이고) 살인자의 가족들까지 사회로부터 차별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이들의 살인이 '생계형 살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생계형 살인이 전제 살인 사건의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이 작품들의 주인공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같은 곳에서나 뉴스 등에서 보이는 쾌락형 살인자들이었어도, 이들을 용서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린 시절 부모님께 버림받고 생활이 힘들어서, 동생을 대학에 보내고 싶어서... 흔히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면, 애초에 그들은 살인을 '감히' 저지르면 안됐던 것이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난 공지영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손을 들어주고 싶다.

다만, 소설로서의 감동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편지보다 상당히 앞섰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토록 강경하게 '그들은 더 벌을 받아야해!'라고 나오키를 통해 주장하지만, 마지막은 도대체 알 수가 없게 끝나 버렸다. 이것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정말 그래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게이고씨가 가지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난 이렇게 생각하지만, 꼭 이게 답은 아닌것 같군요.'라고 말하고 싶어서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난 일본어를 못하니까. (혹시 누가 이 글을 보고 대신 물어봐 주려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이후 7년, 공지영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생명'이란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며, "때론 살아서 이 생을 견디는 것이 죽음보다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목숨이라도 분명 유지할 가치는 충분하다."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 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6년 신작. 동생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강도 살인을 저지른 형과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는 동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로에게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 형제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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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영진
    2007/03/2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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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일본어를 못하니까. (혹시 누가 이 글을 보고 대신 물어봐 주려나?)
    -> 내가 물어보라는 것이냐? -_-;;;

    • 피디
      2007/03/23 21:25
      댓글수정, 삭제

      낄낄.
      이거 쓸 때 네 생각을 하고 쓴건 아니지만, 물어봐주련?
      너가 힘들면 상인이형한테 부탁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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